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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28, 2020

대법원장은 가장, 판사는 식구?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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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재판에서 느닷없이 ‘가장-식구’ 논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측 이재환 변호사의 말이었다.

이날 재판에선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법원행정처 문건을 법정에 꺼내 확인하는 서류증거 조사를 진행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대선 개입 사건 등의 법리 쟁점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희망사항, 향후 시나리오, 상고법원 도입에 미칠 유불리를 분석해 재판 개입과 거래 의혹을 받은 문건들이다.

이 변호사는 이 문건들이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과 같은 사법행정권자가 당연히 작성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서 ‘가장-식구’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법행정을 하는 분들은 ‘가장’이고 판사들은 그 안에 있는 ‘식구’입니다. 판사들이 판결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사법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그 판결 때문에 어떤 외부의 태풍이 불어올 것인지를 예상해야 되고 분석해야 됩니다. 여기 나온 모든 서류가 분석과 예상입니다. (…) 그런데 이 사건(사법농단 사건)은 분석만 하면 재판 개입의 의도라고 단정을 하고 들어갑니다. 태풍이 올때 태풍이 어느 경로로 올지, 전라도로 올지, 경상도로 올지 분석해서 대책을 세우는 것은 사법행정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이 변호사)

2018년 8월8일자 <주간경향-시사 2판4판> 투잡 스리잡. 그림 김용민.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8년 8월8일자 <주간경향-시사 2판4판> 투잡 스리잡. 그림 김용민. 경향신문 자료사진.

법원을 가장의 권위와 지배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부장제 가족 형태에 빗대는 듯한 이 변호사 말에 검찰이 반박했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과, 그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관료적 구조가 사법농단 사건의 원인으로 지적된 상황에서 이 변호사는 오히려 그러한 구조가 합당하다고 읽힐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채희만 검사가 말했다. “변호인 진술은 결국 법원이 하나의 ‘위계 조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사법행정권자가 판사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요. 재판하는 법관에 대한 사법행정권자의 직무권한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피고인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가장이면 태풍이 뻔히 오는데 (우산을 펴고) 비를 막을 수는 있겠죠. 그런데 판결이나 결정의 방향이 잘못돼있으면, 파장이 예측된다고 하면 사법행정권자가 그 판결을 미리 바꿀 수 있는 겁니까? 이 사건은 그러한 시도의 결과를 기소한 겁니다. 사법행정권자는 독립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일선 법관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게 역할이 아닌지, 과연 법원에서 무엇이 주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채 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등은 재판에 대해서는 사법행정권자에게 아무런 직무감독권이 없다면서 재판 개입 혐의에 적용된 직권남용죄를 부인하고 있다. 막말, 고의 재판 지연, 편파 진행, 인권침해 등 명백한 잘못이 있다면 사법행정권자가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권한을 남용해 재판 개입한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유죄라는 검찰 입장과 상반된다.

채 검사 말에 이 변호사가 ‘가장-식구’ 발언에 대해 해명했다. “식구는 돈을 벌지 않습니다. (식구가) 학생이면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가장의 역할은 따로 있습니다. 가장이라고 식구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전제주의적인 사고입니다. 가장과 식구의 역할이 다릅니다. 가장이 바깥에서 돈을 벌어주기 때문에 식구가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입니다. 그 역할이 다른 것이지 가장이 위고 식구는 가장이 시키는대로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 학생은 바깥에서 부모가 어떻게 돈을 벌어오는지 모릅니다. 저도 (법원에 판사로) 있었지만 법원행정처가 뭐하는 데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재판만 했지. 이번 사건을 보고 법원행정처가 이런 일을 하는구나 알게 됐습니다.”

문건들은 법원행정처가 청와대·국회·언론 등을 대응하는 업무를 하면서 중요사건의 판결이 법원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것에 불과하고, 사법농단 사건이 문제가 된 것은 일선 판사와 시민들이 법원행정처의 속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주장으로 보인다. 이 변호사도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이다.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 중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된 것도 있다. 피고인들은 이는 ‘참고자료’일 뿐이라서 법관 독립 침해와 무관하다고 한다.

변호인들은 지난 재판에 이어 이날도 검찰의 서류증거 조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검찰은 서류증거의 주요 대목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 변호인들은 굳이 낭독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법정에서 신문이 이뤄진 증인에 대한 검찰 조서의 경우 검사가 다시 법정에서 낭독하면 증인신문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취지다. 양 전 대법원장 측 이상원 변호사는 “일본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의 형사소송 절차에서는 검찰 조서를 이런 식으로 조사하지 않는다”며 독일의 형사소송법 조항을 댔다. ‘어떤 사실의 증거가 개인의 인지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 공판에서는 그를 신문하여야 한다. 신문은 이전의 신문에 관해서 작성된 조서나 어떤 진술서류의 낭독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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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9, 2020 at 07:04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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