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가지 않으면 내가 뛰어내려 죽겠다!”경찰기동대는 건물 안과 맞은편 건물 옥상 등으로 밀고 들어왔다. 민종덕은 결국 뛰어내려 척추가 부러진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어서 신승철이 “물러가라”며 깨진 유리창으로 두 차례 배를 갈랐다. 스무 살 재단보조 박해창은 동맥을 15㎝가량 그었다. 노동자들은 방 안에 있던 종이에 휘발유를 뿌리고 “다 같이 죽자!”고 울부짖었다. “어머니를 모셔와라! 모셔오지 않으면 모두 다 죽어버리겠다.” 이어서 스물한 살 재단보조공 김주삼이 유리 조각으로 배를 몇 차례 그었고, 전태일의 여동생인 스물다섯 전순옥이 웃통을 벗어 아래로 던지고 창문으로 올라가 땅으로 뛰어내렸다. 전순옥의 다리 한쪽을 간신히 잡고 늘어진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를 끌어올렸다. 이어서 열아홉 살 미싱보조 임미경이 웃통을 벗고 유리 조각을 집어들고 다른 창문 위로 뛰어 올라갔다. “제2의 전태일은 여자가 되어야 한다. 딴 사람 희생할 것 없이 내가 죽겠다!”고 소리치면서 “놔요, 놔요”라며 울부짖었다.1977년 9월9일이었다. 모든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가 봉쇄된 긴급조치 아래 겨울공화국 시절, 박정희 정권은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을 강제로 폐쇄하고, 이소선을 구속했다. “노동교실을 돌려달라!” “어머니를 석방하라!” 그들은 전태일의 영정이 걸린 노동교실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이었던 청계피복노조, 그리고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청계천 어린 동심들의 어머니로,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난 이소선을 다시 빼앗길 수 없었다.
“영진이 어딨느냐. 영진아… 나, 태일이 엄마다.”“정말입니까. 전태일 어머니 맞습니까.”“어머니, 나는 운 좋은 놈입니다.”“지금 그 꼴을 하고 있는데 뭐가 운이 좋다는 거냐?”“어머니를 만났잖아요. 태일이 형한테 가면 어머니께서 노동자를 위해 살아오신 얘기 전해드릴게요.”“살아서 싸워야지, 태일이한테 뭐 하러 가냐.” 1986년 3월17일 구로공단 신흥정밀에서 일하던 박영진과 동료 여덟 명이 점심시간 식당 구내에서 비참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낭독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금세 구사대와 전투경찰이 달려왔다. “열 셀 때까지 물러서지 않으면 분신하겠다”고 경고했지만, 경찰들은 “어서 죽어봐!”라고 비웃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아홉, 열!” 불길이 타올랐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삼권 보장하라!” 스물일곱. 구두닦이, 신문배달원으로 살다 노동자가 되었던 박영진이 ‘태일이 형한테 가면 어머니께서 노동자를 위해 살아오신 얘기를 전해주겠다’고 한다. 이런 눈물겨운 ‘인편’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박영진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묘소 바로 아래에 묻혔다.
살아서 싸워야지
죽더라도 타고 싶었던 희망버스
네가 죽은 날 나도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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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6, 2020 at 09:33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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